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세 번이나 재혼하셨다.
그 세 번째 어머니는, 열여섯 해 동안 나를 돌봐준 분이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성격과 폭력, 말이 안되는 고집 때문에 이혼당하고 이혼 뒤에도 여전히 나를 '막내 아들'이라 불렀다.
법적으로는 남이 되었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가족이었다.
이혼 후 어머니는 강아지 여러마리와 함께 폐지를 주워 팔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종이 상자를 든 손끝은 늘 상처투성이였고, 무릎은 늘 까져 있었다. 가끔 찾아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가슴이 아팠다.
2년 전 여름,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 무더위 속에 굽어진 허리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잠시 앉아 계시는 어머니를 만났다.
- 더운데 뭐하려 와? 밥은?
늘 똑같은 말이지만 그 말은 혼자사는 날 걱정하는 말이였다.
거리에 서서 잠시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허름한 지갑에서 돌돌 말린 봉투하나를 꺼내 내 휠체어 사이에 던진다.
보나마나 돈이다.
- 이거, 용돈 써라. 얼마안돼.”
- 엄마. 나 돈 있어. 엄마나 이돈으로 맞난 거 사드셔. 내가 용돈 드려야 되는데 엄마가 용돈을 주면 어떻하나."
그러나 소용없었다. 누가 최씨 고집을 꺾을 수 있나?
집에 돌아와 봉투를 펄쳐 안을 보니 80만 원이 들어 있는게 아닌가?
순간 울고 말았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 구겨진 돈안에 엄마의 세월이, 엄마의 고생이 고스라니 담겨 있었다.
난 그 돈을 쓰지 못했다. 그 돈을 쓰는 건 죄를 짓는 것처럼 느꺼졌다.
그로부터 1년 뒤, 소식이 들려왔다. 폐지를 줍다 트럭에 치였다고. 두 다리가 부러지고, 그렇게 걷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전해준 건 내 친 이모였다.
이모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분이다. 친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연락을 끊어도 되는 사람인데 이모는 그러지 않았다.
언니가 없는 집을 찾아다니며, 그러니까 내 새엄마를 ‘언니, 언니’ 하며 챙겨주던 귀한 이모. 자기 자식들도 있는데
조카들을 챙기던 이모. 그 이모 덕분에 이번에도 알게 됐다. 엄마가 성북요양병원에 계시다는 걸.
오늘, 나는 1년 만에 어머니를 찾아갔다. 성북요양병원 하얀 침대 위, 엄마는 누워 계셨다.
두 다리는 바싹 말라 있었고, 머리는 온통 백발이었다.
- 우리 아들 왔네.
미리 사간 과일과 음료수 상자를 놓고, 작은 봉투에 돈을 넣어드렸다.
- 엄마, 이거 엄마 맛난서 사드셔. 얼마안돼.
-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너나써!
여러차례 마다 하시는 걸 그냥 이불 밑에 넣었다. 엄마도 포기햐셨는지 웃으셨다.
- 그래. 잘 쓸게.
오늘은 내가 이겼다. 그 최씨 고집을 꺾었다.
요양병원을 나서는데, 내 마음속 어딘가가 아파왔다. 그때 그 구겨진 80만원이 아직 서랍속에 있다.
그 구겨짐이 내 마음의 주름이 되어 아직 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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