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산책을 하다가 아파트 중앙에서 주황색 감을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를 보게 되었다. 순간, 옛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나름 도시에서 살았지만 시골 같은 오래된 집, 배나무, 대추나무, 청포도나무, 여러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텃밭, 그리고 커다란 감나무...
쿰쿰한 곰팡이 썪인 강아지 냄새, 그리고 지붕 위를 내리치던 둔탁한 충격음, 그 모든 게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감나무를 바라보며 감나무에 대해 생각했다.
감나무... 단순한 한 그루의 감나무지만 한 사람의 삶을 잠식하고, 한 집의 이름을 대신할 수 있으며, 한 가족의 공기와 시간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과 뿌리는 때로는 어떤 폭력보다 강하게 인간의 삶을 붙잡아두기도 한다. 내게 감나무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감나무를 떠올리면, 나는 마당으로, 지붕으로, 여름의 열기로, 지독한 냄새로, 그리고 한 아버지의 무기력으로 되돌아간다.
우리 집 마당에는 거대한 감나무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감나무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 감나무가 자라 어느 정도 켜졌을 땐 매년 가지치기와 열매를 솎아 내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 감나무는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를 선물하곤 했다. 하지만 나무가 자라는 속도를 아버지의 세월이 따라갈 수 없게 되면서, 정겨운 풍경은 어두운 그림자가 되고, 그 어두운 그림자는 전체 공기가 되고, 그 공기는 결국 우리의 삶이 되었다.
아버지가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가지치기를 할 수 없었고, 감나무는 제멋대로 가지를 뻗어 하늘과 지붕을 뒤덮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점점 줄어들었고, 낮인데도 어둠이 눌러앉았다. 집은 환해질 수 없었고, 우리는 그림자에 갇혀 살아갔다.
감나무는 자기가 열매맷은 감도 스스로 감당하지 못했다. 여름이면 단단한 감들이 쿵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소리는 망치를 내리치는 소리처럼 둔탁했고, 어린 나는 그 소리에 놀라곤 했다. 그것은 폭력적인 둔탁함이었다. 지붕이 깨지고, 개집에 떨어지면 밤낮없이 개가 짖는 원인이 되었다. 바닥에 떨어지면 단단한 시멘트 바닥도 금이 갔다. 감이 깨져 땅에 번지면 곧 썩은 냄새가 솟았다. 그 냄새는 여름의 열기와 섞여 더 진득하고 더 역하게 퍼졌다. 파리들이 끓었고, 곰팡이는 금방 번졌다. 나는 그 냄새를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그 냄새는 단순한 후각의 기억이 아니라, 시간 자체의 냄새였다.
아버지는 금이 간 감을 주워 모았다. 씻지도 않은 감, 개똥 위에 섞여 있던 감, 곰팡이가 핀 감. 손에 쥐면 미끈거리고 차갑고, 껍질은 꺼끌 했으며, 속살은 질척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닦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먹어라. 괜찮다.”
나는 그 감을 먹은 날이면 끙끙 앓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위생적으로 더러운 그런 감을 먹었으니... 목으로 넘긴 것은 감맛이 아니라 쓴 맛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지 않는 억압을 주었다. 설명되지 않지만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체념이었다.
나는 감나무를 미워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감나무 아래에서 한 인간이 보여준 무력과 방치, 그로 인해 만들어진 어두운 공기와 운명을 미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감정의 이름을 몰랐다. 그래서 감나무를 미워하는 것이 가장 쉬웠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감나무집”이라고 불렀다. LPG 가스라도 주문하는 날이면 주소를 말하지 않아도 "감나무 집인데요." 하면, "아~ 그 감나무집이요” 하고 배달 기사들이 곧잘 찾아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타인의 세계에서 우리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나무의 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집에 큰 나무가 있으면 기운을 막아서 집안이 안 좋아져.”
그 말은 미신과도 같지만 나는 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감나무가 막은 것은 햇빛이 아니라 가족의 삶의 방향이었다는 것을.
재개발로 집이 허물어지고, 우리는 이사를 가게 되어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나는 감나무에서 벗어나는구나.”
그러나 새로 이사한 집에 텃밭에도 감나무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벗어난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그 나무의 그림자를 몸 안에 들여 키우고 있었다는 것을. 감나무는 장소가 아니라 내면 속에 한 구조였고, 기억의 방식이었으며, 내가 짊어진 한 시대의 형체였다.
그리고 지금, 아파트의 감나무 앞에서 나는 다시 멈춰 섰다. 감의 주황빛은 아름다웠으나, 그 빛은 내게 오래된 어둠을 비추는 조명과도 같았다. 벗어났다고 믿었던 시간, 잊었다고 생각했던 냄새, 무뎌졌다고 여겼던 충격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되살아났다.
나는 감을 먹지 않는다. 아니.. 잘 먹지 않는다. 감의 단맛의 기억보다, 감나무 아래에서의 기억들이 더 쓰기 때문이다.
감나무의 그림자에선 벗어났지만 내면 속에 그림자는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언젠가 저 감나무를 바라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날이 오기를, 감나무에 가려지지 않고 밝은 공기를 온전히 숨 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나는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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