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1999년, 나는 한 여자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여자도 나를 좋아했다고 한참이 지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같은 교회에 다녔고, 같은 장애인 선교팀에 속해 있었다. 예배 시간보다 팀 모임 시간에 더 자주 마주쳤고, 외부에서 자주 만나 어울려 다녔고, 함께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며 봉사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그 아이는 나이에 비해 조금 촌스러운 옷을 입고 다녔고, 눈에 확 띄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자꾸 시선이 갔다. 무엇보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불편함이나 어색함 대신, 아주 자연스럽게 내 곁에 섰다. 내가 걸음을 옮길 때면 말없이 자신의 팔을 내주며 “오빠 나 잡아요” 하고 웃었고, 나는 그 팔을 잡으며 느리지만 함께 걸었다. 그 작은 접촉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었다. 손이 닿고, 어깨가 부딪히고, 때로는 이유 없이 가까이 서 있는 그 거리감 속에서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삶은 늘 그렇듯, 가장 자연스럽던 순간을 아무렇지 않게 끊어버린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기, 나는 형의 일을 돕기 위해 전주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1년 가까이 머물게 되었다. 처음에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매일 밤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고, 하루의 끝을 서로에게 건네며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거리는 생각보다 정직했다. 몸이 멀어지자 마음도 조금씩 간격을 벌리기 시작했다. 통화는 점점 짧아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먼저 걸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아무 말도 없이 연락은 끊어졌다. 그 공백은 특별한 사건도 없이, 그냥 그렇게 생겨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어쩌면 그때는, 그 감정을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13년, 우리는 다시 연락이 닿았다. 오랜 시간의 간격이 있었지만 목소리는 금방 예전으로 돌아갔다. 다만,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있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그 일상은 내가 상상했던 어떤 평범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지친 숨이 섞여 있었고, 웃음은 자주 끊겼다. 부부 관계는 거의 없었고,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관계의 결과는 늘 임신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낙태를 반복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반복 속에서 그녀는 결국 남편에게 정관 수술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가 왜 그걸 해야 되는데”라는 말뿐이었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는 너무 가벼웠지만, 그 무게는 전부 그녀가 짊어지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선택했다. 자신의 몸 일부를 포기하는 쪽으로. 그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 그 말을 하는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결혼하게 되었는지.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집 이야기를 꺼냈다. 엄격한 가정, 숨이 막히는 분위기, 어디에도 도망칠 수 없는 일상.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부모의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결혼이었다고 했다.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사랑이 아니라 탈출이 이유가 된 결혼. 나는 다시 물었다. 그 남자는 어떻게 만났냐고. 그녀는 당시 온라인 채팅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매일 밤 또래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어진 모임에서 또래 남자를 만났고, 술에 취해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임신. 그 임신은 선택의 이유가 되었고, 동시에 그녀를 묶어버린 시작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나는 한 가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 그때 나 좋아하긴 했어?” 그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좋아했어요”라고 말했다. 그 대답은 너무 쉽게 나왔고, 그래서 더 복잡하게 들렸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왜 나는 아니었어?” 그 질문 뒤에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빠가 장애인인 건 상관없었다고. 그런데 결혼하면 성관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화가 나기보다는 허탈했다. 우리가 나눈 시간들, 팔을 잡고 걸었던 순간들, 서로의 온기를 느끼던 그 기억들이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말했다. "너 나랑 키스해본 적 있어? 제대로 손 한번 잡아본 적 있어?" 그리고 덧붙였다. "그건 네가 만든 생각이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그때 나를 선택했으면 경제적으로는 힘들었겠지만,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었을 것 같다고,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늦어도 너무 늦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분명한 감정 하나가 남아 있었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아주 오래된 오해에 대한 씁쓸함이었다. 장애인은 성을 모를 것이라는 생각, 욕망이 없을 것이라는 단정, 사랑을 나누는 데 있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는 편견. 우리는 늘 그런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묻고,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이미 답을 정해놓는다.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불완전할 거라고. 부족할 거라고.
하지만 그건 틀린 질문이다. 가능하냐고 묻기 전에, 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몸이 다르다고 해서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고,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많이 설명해야 하고, 더 많이 증명해야 하며, 때로는 존재 자체를 이해시키기 위해 시간을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지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설명과 납득의 과정을 거쳐야만 허락된다.
나는 이제 안다. 그녀가 나를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이미지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미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오래된 이야기라는 것도. 장애인의 몸은 결핍으로 정의되어 왔고, 그 안에 담긴 욕망과 감정은 늘 뒤로 밀려났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랑 앞에서조차 망설이고, 누군가는 아예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설명하며 살아야 할까.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긴 할까. 어쩌면 그 답은 아직 멀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장애인의 몸은 사랑에서 제외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단지 다른 방식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 다름은,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할 이유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할 하나의 삶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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