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욕망 없는 존재’로 치부되거나,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부정되는 사회의 시선 속에서, 장애인의 성은 오랫동안 숨겨져야만 하는 금기였다. 하지만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욕망까지 멈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육체 속에서 발버둥 치는 욕망은 더 깊은 곳에서 꿈틀거린다.

타인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서, 내 몸의 리듬에 맞춰 욕망을 표출하는 나먼의 행위는 단순한 육체적 쾌락을 넘어선다. 그것은 온전한 나 자신을 확인하는 의식이자,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절규에 가깝다. 나는 이 자위행위를 통해 내 몸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생명력을 가진 존재임을 느낀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경계 밖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삶의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어릴 적부터 들었던 교희 목사님에게 들었던 설교… “육체의 욕망은 죄”라는 설교는 내 머릿속을 맴돈다. 손을 흔들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오고, 경건한 기도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단죄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욕망이 죄가 아니라, 그 욕망을 주신 분 역시 신이라는 사실을. 신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 안에는 느끼고 사랑하고 갈망할 수 있는 감각을 함께 심어두셨다. 욕망은 타락의 흔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본능이다.

그것은 신이 내게 허락한 감각의 언어이며, 생명 그 자체의 리듬이다. 신이 인간을 만드실 때, 신은 단지 이성만이 아니라 욕망도 함께 불어넣으셨다. 그러니 내가 내 몸을 느끼고 탐색하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이 시간은, 쾌락이 아니라 신의 선물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나의 자위행위는 육체의 해방이자, 신이 내게 준 몸과 욕망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귀한 시간이다.

그것은 단순히 욕구를 해소하는 행위를 넘어, 사회가 침묵하고 외면해 온 나의 존재를 긍정하는 행위이다. 내 몸이 온전하지 않다고 해서, 내 삶의 모든 욕구도 온전한 않은 것도한 아니다. 나는 이 자위행위를 통해 나를 억압해 온 세상의 편견에 저항하고, 동시에 나를 창조한 신의 뜻에 귀 기울인다.
내 몸은 불편할지라도, 나의 욕망은 신이 내 안에 심어둔 가장 뜨거운 생명의 불씨다.
그리고 나는 그 불을 당당히 말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몸이 쓰는 가장 솔직한 언어이자, 나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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